[데스크칼럼] 김정미 대전본부 부장
“어이~ 이관술. 너 죽는 마당에 ‘대한민국 만세’ 부를 수 없냐?” “대한민국 만세는 모르겠고, 조선민족 만세를 부르겠소” 이관술이 “조선”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서서 총’ 자세를 취하고 있던 헌병과 경찰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탕탕탕!” 이관술은 ‘악 소리 한 번 못하고 고꾸라졌다.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가 대전형무소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실상을 취재해 기록한 ‘골령골의 기억전쟁’ 첫 주인공은 독립운동가 이관술이다. 책은 민간인 학살의 대명사로 꼽히는 한국전쟁기 최대 민간인 학살 터 곤룡골 피해자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대전에선 동구 산내 학살터를 곤룡골 혹은 주민들 표현에 따라 골령골이라 부른다.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대전 동구 산내 곤룡골에서 학살된 피해자는 약 7천여명. 한국전쟁 직전 전국 주요 정치·사상범의 집결지였던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해 대전과 충남의 보도연맹사건 관련자, 부역혐의자 등이 학살됐다.
지난 22일 대전 동구 산내 곤룡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2년차에 접어든 유해발굴사업은 오는 11월까지 시굴조사 8천434㎡, 정밀조사 1천㎡를 발굴하게 된다. 그동안 발굴한 유해만 234구. 사업은 내년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대전 동구 낭월동 12-2번지 일원 약 9만8천㎡ 규모. 학살의 참극이 벌어졌던 장소에 전국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이 조성된다. 지난해 국제설계 공모를 거쳐 현재 설계용역이 진행중으로 유해발굴이 완료되는 내년 7월 착공, 2024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길은 아직도 멀다. 산내 학살현장에서 모든 사건을 지휘하고 점검했던 가해자가 학원 이사장을 지내고 대학 교정에 흉상으로 남았다는 지적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올해 봄부터 대전에선 기억전쟁이 한창이다. 3월엔 동구청과 한국영상위원회의 공동협찬으로 산내 곤룡골 민간인 희생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저갱’이 제작됐다. 20대 초반 젊은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전쟁과 전쟁 당시 산내 곤룡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 올해 하반기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된다. 마당극단 우금치는 지난 16일과 17일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을 소재로 한 마당극 ‘적벽대전(赤碧大田)’을 선보였다.
김정미 대전본부 부장
오는 30일까지 대전역 동광장 인근 전통나래관 기획전시실에서는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이 주최하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특별전’이 열린다. 마당극단 좋다는 오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창작마당극 ‘묘꽃’을 소극장 상상아트홀 무대에 올린다. 곤룡골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이 연극은 역사에 대한 이해와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한다.
전쟁의 기억을 뛰어넘는 대전에서의 기억 전쟁은 인권과 평화의 바탕 위에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기억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곤룡골을 통해.
김정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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