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는 왜 국제정치의 핵심이 되었나-국민일보

미 해군 소속 군함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 남중국해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 타이완 필리핀 브루나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과 인접한 남중국해는 쉼없이 전투기와 군함들이 출동하는 곳이자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대치하는 현장이다. 글항아리 제공
지정학이란 지리적인 위치가 국제정치나 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분야다. 그리고 지금 남중국해보다 더 중요한 지정학적 분석 대상을 찾긴 어렵다.

전 세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곳, 항공모함이 무력시위를 하고 전투기와 잠수함이 쉼 없이 출동하는 바다, 대형 유조선과 컨테이너선들이 가득한 해상 수송로,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대치하는 현장, 아시아의 끓어오르는 솥, 21세기 국제정치에서 가장 전략적인 지역, 남중국해다.

남중국해는 왜 국제정치의 핵심이 되었나-국민일보
‘일촉즉발 남중국해의 위험한 지정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지리 대전’의 출간은 남중국해 이슈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원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지리를 통해 현실 국제정치를 들여다보는 접근법도 흥미롭다. 특히 저자인 로버트 D 캐플런의 원숙하면서 생생한 글은 이 책을 사랑하게 만든다. 지정학 분야의 가장 뛰어난 작가, 국제정치와 외교 문제를 특유의 여행기에 담아내온 베스트셀러 작가 등으로 소개되는 캐플런은 다소 생소하고 딱딱할 수 있는 국제정치 이야기를 르포르타주나 여행기, 역사서처럼 매력적인 읽을거리로 제공한다. ‘지리의 복수’ 등 그의 전작들을 읽은 이라면 새 책이 더 반가울 듯하다.

“유럽이 육지의 풍경이라면 동아시아는 바다의 풍경이다. 바로 그 점이 20세기와 21세기의 중요한 차이다.” 책은 도입부부터 인상적이다. 캐플런은 21세기를 동아시아의 시대, 그리고 바다의 세기로 바라본다. 이어 “해군이 가장 중요한 단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고 “동아시아의 지리적 윤곽은 지금이 해군의 시대임을 나타내고 있다”며 지정학자이자 국제전략가로서 면모를 드러낸다.

남중국해 수역 지도.
동아시아, 바다, 해군이라는 단어는 모두 남중국해로 향한다.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의 바다로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있으며, 위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타이완 필리핀 브루나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인접해 있다. 캐플런은 “지중해가 유럽의 중심이듯 남중국해는 아시아의 중심”이고 “남중국해는 이미 전 세계적 세력 균형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 권력 정치의 핵심점”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세계적 세력 균형 유지’라는 말이 중요하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이 오랫동안 복잡하게 중첩된 곳이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으며, 전 세계 해상 교통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주요 수송로다. 그러나 캐플런은 미국과 중국이 대치하고 각축하는 세계 질서의 균형점이 바로 남중국해라는 점에 주목한다.

남중국해는 현재 미 해군이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무섭게 해군력을 키우고 있다. 인접 국가들은 미국에 기대 중국과 맞서는 한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바다에서 힘의 균형이 어떻게 흔들리느냐에 따라 세계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캐플런의 시각이다.

미국은 20세기 초반 카리브해 연안을 지배함으로써 세계 초강대국이 됐다. 서반구를 효율적으로 장악했고 동반구에서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만약 중국이 남중국해를 지배하게 된다면? 동아시아가 중국 지배의 단일 체제가 되느냐, 인도나 베트남 등이 부상하면서 다극 체제로 변모하느냐도 이 바다에 달렸다.

캐플런은 21세기 세계 질서라는 거대한 틀에서 남중국해를 조망한 후 이 중요한 지역에 인접한 국가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타이완에 각각 한 장씩 배분하는데 길지 않은 분량 속에 각국의 지정학은 물론 역사와 정체성,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까지 꿰어낸다. 지정학을 기반으로 한 대담하고 통찰력 넘치는 국가론, 동아시아 문명론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말레이시아가 무슬림이 압도적 다수인 지역에서 중국인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이라는 건 분명하다.” 지루한 관점, 낡은 인식을 후려치는 이런 문장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싱기포르를 다룬 5장을 보자. “싱가포르는 중동의 이스라엘만큼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작고 외로운 존재였다.” 싱가포르를 이스라엘과 유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실용주의로 규정하는 건 익숙하지만 “극단으로까지 밀어 올린 실용주의를 서방의 인문주의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말레이반도 남단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주위의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생존해온 유일한 길이었다. 싱가포르의 내적 논리는 그 지리적 취약성에서 나온 것이다”와 같은 지정학적 분석은 참신하다.

필리핀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마 어떤 나라도 필리핀만큼 미국으로부터 많은 정치적·군사적·경제적 투자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어떤 나라도 필리핀처럼 그 투자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타이완은 특히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곳이다. 캐플런은 “중국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타이완을 중국에 합병시킬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며 “그것이 서태평양의 기본적인 갈등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타이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져본다.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로 본토와 전쟁이 발발한다면 타이완은 그들의 자유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싸우려 할 것인가” “타이완 또한 홍콩처럼 상당한 정도의 자치와 독자적인 정체성이 허용되는 중국의 일부가 될 것인가.”

남중국해는 중국의 위협이라는 문제와 함께 앞으로도 아시아는 물론 국제정치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당장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타이완 합병이 5년 이내에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타이완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이완은 바다 쪽을 향한 중국의 연장선일 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제도 최남단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말레이시아와 연결되는 동남아시아 최북단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이완섬 그 자체 그리고 2300만 타이완인의 운명보다 더 많은 것이 타이완에 달려 있다.”

캐플런은 가장 뜨거운 바다 남중국해를 다루면서도 차갑고 현실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울 것인지도 예단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바다의 열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21세기 세 번째 10년의 세계를 걱정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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